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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곡성 시골교회

Updated: Jan 13, 2023



우리 집은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전라남도 곡성 출신이다.


나 또한 비록 5살 무렵 서울로 이사를 와서 곡성에 대한 많은 기억은 남아 있지 않지만, 어렸을 적 과수원과 논밭을 뛰어다닌 기억은 어렴풋이 남아있다.


우리 집안에 처음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신 분은 친할머니였다.


난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친할머니 대한 이야기를 간혹 들었지만… 어떻게 친할머니께서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으셨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신학교에서 선교사 준비를 하면서 비로서 알게 되었다.


( 다음의 이야기는 어머니께서 시집오셔서 당시 시어머니셨던 친할머니를 통해 들으신 간증 내용이다.)


배고프고 가난했던 시절 친할머니는 당신의 자녀들이 태어난 지 얼마 안되 연이어 세상을 떠나자 슬프고 낙심하여 종종 강가에 앉아 많이 우셨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슬픈 마음에 또 강가에 앉아 흐느끼고 있는데.. 이 모습을 지켜본 다리 밑에 사는 나병에 걸린 한 여인이 할머니께 말을 건네며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단다. 그리고 그 때부터 2시간 이상 걸어가야 나오는 곡성의 작은 시골교회를 다니셨다고 했다.


( 그 당시 전라남도에는 ‘문둥이’ 라 불리는 나병 환자들이 많았는데… 주로 마을 사람들을 피해서 다리 밑 움막에서 살고 있었다. 그 시절 많은 나병환자들은 전라도에서 의료 선교 사역하시는 미국 선교사님들을 통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신 분들이 많았다고 한다. )


하지만 이후부터 친할아버지의 핍박이 시작되었다.


친할아버지는 주일마다 교회를 가려고 하는 할머니를 막으며 몽둥이질과 구타를 시작하였다.


한번은 교회를 다녀온 할머니를 술에 취한 할아버지가 구타와 함께 머리카락을 한 주먹이나 생으로 뽑아버려서 할아버지를 피해 맨발로 교회로 도망가서 교회 바닥에 엎드려 뽑혀 없어진 퉁퉁 부어 오른 머리를 부여잡고 한없이 우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너무 마음이 아파서 내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다.


그 당시 곡성의 작은 시골 교회는 유일한 할머니의 도피처이자 영혼의 안식처였다.


먹고 살기도 힘든 1930년 무렵… 5명의 어린 자녀들을 키우며 할아버지의 모진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신앙을 꿋꿋이 지키며 복음을 자식들에게 잘 전수 시켜 주셨던 한 여인으로 말미암아 신앙의 유산이 끊기지 않고 지금까지 우리 세대와 우리 자녀들에게 까지 이어올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난 그때 그 곡성의 작은 시골 교회를 누가 지었는지… 교회 이름은 무엇인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


하지만 그 교회는 한 여인이 모진 풍파와 고난의 세월 속에서 삶을 끝내고 싶은 수많은 이유가 난무하는 중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오직 삶의 소망으로 여기며 참고 인내하며 수많은 인생의 굴곡을 넘어갈 수 있는 영혼의 안식처였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 봉헌 드린 ‘우뚬따이 교회’는 개인적으로 남다른 의미가 있다.


'버킷 리스트' ( Bucket List) 라는 것이 있다.


소위 죽기 전에 마음에 품고 있었던 소원을 해 보는 것이라 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크루즈 여행이나 세계일주 또는 스카이 다이빙처럼 늘 마음속에 품고만 있었던 평생 소원을 하는 것으로 버킷 리스트를 채운다.


하지만 교회가 없는 선교지에 교회 한 곳을 주님께 바치는 것은 내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다.


깊고 깊은 산속에 세운 우뚬따이 교회는 혹시라도 내 친할머니처럼 삶을 포기해야 하는 이유가 살아야 할 이유보다 많은 누군가에게 영혼의 도피처이자 안신처가 되길 기도하며 건축하였다.


그저 단 한 영혼만이라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핍박 받을때, 그 교회를 안식처 삼아 그 곳에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주님의 참 평안과 소망을 부여잡고 어렵고 힘든 또 하루를 살아내는 힘과 용기를 얻기를 소원하는 마음으로 봉헌하였다.


3월 22일에 시작한 우뚬따이 교회 공사가 원래의 계획대로 5월 중으로 드디어 마치게 되었다.


교회가 너무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나는 앞으로 오지에 교회를 건축하는 사역을 내 사역의 중점 사역으로 둘 생각은 없다.


또한 선교지에서 무분별하게 선교사들이 교회 건물을 마구 세우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있음을 이미 잘 알고 있다.


나 또한 ‘교회’ 란 건물이 아닌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하는 모든 주님의 백성들이 ‘교회’ 이며 그리스도의 제자를 양육하고 세우는 사역이 단지 건물을 세우는 것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봉헌한 우뚬따이 교회는 나와 하나님만 아는 내 사랑의 고백이자 감사의 표현이다.


첫 번째는 하나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하루 하루 숨쉬며 살아가는 것이 감사이며 모든 것이 그 분의 은혜이다.


교회를 봉헌했기에 혹시 더 큰 복을 주시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이 아닌...


이미 나를 위해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그 크신 사랑을 어떻게 보답할 길이 없어서... . 그 사랑에 대한 작은 표현일 뿐이다.


두 번째는 지금까지 함께 기도와 물질로 동역해 주신 교회와 동역자들을 대신한 감사이다.


선교사는 늘 받기만 하고 그것을 당연히 여기는 존재가 아닌… 모든 후원자들께 받은 사랑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고픈 내 순수한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은 우리 집안에 복음의 빛이 꺼지지 않도록 할머니에게 피난처를 제공해 준…. 이름도 알 지 못하는 곡성의 작은 시골 교회에 대한 내 감사이다.


전라남도 곡성의 그 작은 시골교회가 없었다면 할머니는 당시 어디서 삶의 소망을 찾았을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든 믿는 자들은 다 이런 복음에 빚진 자들이 아닐까....



[Written By 이노웅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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